살인 사건 하나만 하더라도 10년 전과는 자못 양상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증오심에 어쩔 수 없이 죽였고, 속사정을 알게 되면 범인에게도 동정의 여지는 있었던 것이 10년 전의 살인사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살인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된 데는 영적인 배경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가 인령(人靈)의 감성을 잃고 자연령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연령(自然靈)이란 이 세상에 모습을 가진 적이 없는 영을 말한다.
이른바 여우, 용신, 너구리같은 영은 자연령에 속한다.
여우나 너구리라고 해도 동물의 영이 아니다.
그러한 성질을 지닌 에너지체, 혹은 그러한 모습을 취하고 인간의 앞에 나타나는 에너지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수목에 머무는 영과 꽃에 머무는 요정도 자연령이다.
자연령에는 날씨와 같은 자연 현상을 담당하는 역할이 있다.
자연령에는 영계의 의지에 따라 비를 내리기도 화산을 분화시키기도 한다.
옛날 태고적부터 인령은 자연령과 조화를 이루면서 경외하는 마음과 고마움을 느끼며 상호 공존해 왔다.
자연령에도 고급인 것에서 저급한 것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우리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사랑의 에너지는 이 세상에 모습을 지닌 적이 없는 자연령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연령이다.
옛날부터 여우에 홀린다는 말이 있듯이, 인령에 빙의해서 곤란에 처하게 만드는 호랑이령 등은 저급한 자연령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저급한 자연령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저급한 자연령이 증가하고 있는가?
우리들 인령이 지나온 역사에서 인령에게 많은 은혜를 베푼 자연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감사의 마음을 잊는 것을 넘어서 소홀히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급의 자연령은 이 세상에서 멀어졌고 정화되지 않은 저급한 자연령만이 남아 버렸다.
사람은 정화되지 않은 인령의 빙의를 받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혼이 정화되지 않은 부분이 그 사람의 마음의 파장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감동이나 감성이 빈약한 사람의 마음은 저급한 자연령에도 쉽게 감응한다.
이 세상에 만연하기 시작한 저급한 자연령은 무기질의 파장을 가진 인령에 차츰 빙의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감성을 잃고 저급한 자연령과 감응하는 것, 이것이 인령의 자연령화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연령화란 저급한 자연령화를 가리킨다.
전세계적으로 인령의 자연령화는 상당한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자연령화한 인간은 인령다움을 잃는 대신 자연령의 성질을 드러낸다.
인령과 자연령의 가장 큰 차이는 정(情)의 유무이며 자연령에게는 정이 없다.
왜냐하면 자연령은 분령(分靈)이라고 해서 분열에 의해서 증가하는 반면 인령은 어머니가 배 아파하며 아이를 낳고 혈연의 가족을 구성한다.
이로써 인령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따뜻함과 애정, 갈등 등을 배운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이라는 것은 인령에게 있어서 중요하며, 배움의 테마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연령에게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애정이 없다.
백 아니면 흑, 또는 둘 중 하나라는 식의 논리밖에 없다.
곡식을 관장하는 신에게 소원을 빌어서 이루었다면 제대로 예를 표하지 않으면 뜨끔한 맛을 본다고 옛날부터 전해지는 것은 자연령이 지닌 이러한 성질 때문이다.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 봐주는 일도 없으며 도움을 주는 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저급한 신에게는 자신을 받들어 모시면 은혜를 베풀고, 예를 표하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는 극단적인 양면성이 있다.
지금의 인령은 이러한 자연령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선 아동학대 등 부모와 자식간에 벌어지는 비참한 사건이 그 증거이다.
전쟁도 그렇다. 당했기 때문에 보복을 해야한다. 인명에 대해서조차 지나치게 디지털화되어 있다.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 사건도 상징적인 예이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의 잣대를 들이대어 능력이나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순위가 매겨지고 때로는 버려지면서 자라온 영향은 확실히 크다고 하겠다.
세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대부분의 신흥 종교 집단도 바로 자연령에 의한 빙의의 산물이다. 종교관을 운운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끝가지 물질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부모의 돈이라도 훔치게 만드는 것도 저급한 자연령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증가하고 있는 자살자의 심리에서도 자연령화가 미친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리세트한다는 생각은, 안 되면 죽는다는 식의 백 아니면 흑의 자연령적 발상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령으로서의 감성을 되찾는 일이다.
특히 인령에게만 있는 부모 자식간의 인연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인령은 동물 이하로 추락해 버렸다.
동물도 자기 자식은 지킨다.
우리들이 인령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격, 그리고 감성을 되찾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만큼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내용출처 : 영혼을 리드하는 인생지도 (에하라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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